2010/12/10

stored: 100814 위대한 침묵 (Into Great Silence / Die Große Stille,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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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300m 알프스의 깊은 계곡…
그곳에 누구도 쉬이 들여다 보지 못했던 고요함의 세계가 있다

해가 뜨고 달이 지고 별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는 계절 속에서
영원을 간직한 공간을, 그들만의 시간을 만들어 나가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저 조용히 그 일상의 깊이를 바라본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카르투지오 수도원의 일상을 담은 침묵으로의 여행

<무비스트닷컴 발췌>

 

프랑스 알프스의 Grande Chartreuse 수도원의 일상을 다룬 다큐멘터리영화입니다.

이런 저런 사정이 겹쳐서 안국역 씨네코드 선재에 혼자 가서 보게 되었습니다.

아침 11시에 하는 영화니 같이 가자고 할 사람도 없고...


영화라고 해서 영화인줄 알고 갔다가 다소 당황했습니다.

수도사들의 생활을 다루고 있지만 수도사들이 캐릭터가 아닌 풍경으로 인식될 정도로 건조하게 필름에 옮긴 센스가 압도적.

덕분에 3시간짜리 영화가 3시간짜리 풍경화로 변해버리는 진기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인공광을 쓰지않고 촬영한데다, 수도원 자체도 전기사용을 자제하다보니 화질이 안좋다는 느낌은 들지만 그게 또 매력.

수도사들은 성경낭독이나 성가 외에는 말을 아끼고, BGM 조차도 없으니 그야말로 침묵이군요.

어째서 이 침묵이라는게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지는 본편 안에서 나옴...


저야 가진게 너무 많아서 버리질 못하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의 제자되는 길을 떠난 사람들의 잔잔한 품위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그런 영화입니다.


야채죽을 먹으면서 성경을 읽는 모습에서 라면냄비 앞에두고 책읽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든가,

그야말로 침묵을 지키다가 친교의 시간에는 동네 아저씨들처럼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본다든가,

눈이 쌓인 비탈에서 미끄럼을 타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웃는다든가 해도

그러한 자기절제와 희생의 길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의 모습은 강렬한 것이죠.


마지막에 시각장애인 수도사의 인터뷰가 나옵니다만, 이게 참 공감이 가는 내용입니다.

(지겨우셨던 관객이라면 이 인터뷰가 나오면 다 끝났다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그 말처럼, 어지간한 사람들한테 '신앙이 없으면 인생 사는 의미 찾기 힘들게다'라고 하면 화를 먼저 내겠죠?

하지만 이게 진짜 신앙에 가까운 모습일 것입니다.

기억도 떠올리기 싫은 파괴된 사나이라든가, 그런 플롯짜기용 신앙이 아니라요.


이런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치유계가 가지는 단점도 거의 다 드러납니다.

3시간동안 기도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봤습니다.

장시간 기도해본 분이라면 알겠지만, 그거 굉장히 지루하죠.

정신 약간만 놓치면 잠들어버릴 정도로 졸립기도 하고.

하지만 그런 지루함과 졸림을 뛰어넘는 보람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 기도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도 그렇습니다.


비록 친구나 연인을 데려가서 본다면 불평을 들을지도 모르겠지만, 

여백의 미, 행간의 뜻, 침묵의 음악을 느낄 수 있다면 어떠한 영화보다도 알찬 3시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ps.

몇마디 추가하자면, 씨네코드 선재 냉방이 굉장히 강합니다.

반팔옷 입고간다면 어께덮는 숄이나 무릎담요를 가져가는것 추천.

관객수가 적으니 예매도 필요없을듯 합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수도사들 얼굴을 여권사진찍듯이 찍어서 한장씩 보여주는데, 이게 의외로 압박이었음...

이게 말로만 듣던 아이캐치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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